한동안 현대 축구를 지배한 단어는 ‘점유율’이었다.
후방에서부터 짧은 패스로 공을 연결하고, 상대보다 더 오래 공을 소유하며 경기를 통제하는 축구가 가장 발전된 전술처럼 여겨졌다. 펩 과르디올라를 비롯한 여러 감독의 성공 이후에는 골키퍼와 센터백까지 빌드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그런데 최근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조금 다른 장면이 늘어나고 있다.
골키퍼가 전방을 향해 긴 패스를 보내고, 공격수들은 공중볼보다 그다음에 떨어지는 세컨드볼을 노린다. 공을 빼앗은 팀은 여러 번의 패스를 거치지 않고 빠르게 상대 골문으로 전진한다. 코너킥과 프리킥은 물론 한동안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롱스로인까지 다시 중요한 공격 수단이 됐다.
그렇다면 점유율 축구의 시대는 정말 끝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점유율 축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점유율만으로 경기를 지배하기 어려워진 것에 가깝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직접적인 축구가 다시 등장했다.
2025/26시즌 프리미어리그의 대표적인 전술 변화 중 하나는 직접적인 공격의 증가였다.
프리미어리그와 Opta의 시즌 분석에서는 각 팀이 이전보다 긴 패스를 자주 사용하고, 후방에서 전방으로 더 빠르게 공을 운반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세트피스와 롱스로인의 활용도 역시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만 보면 과거의 잉글랜드 축구로 돌아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롱볼은 수비수가 압박을 받았을 때 무작정 공을 걷어내는 방식과 다르다. 공을 보낼 위치와 공을 받은 뒤의 움직임, 세컨드볼을 회수할 선수의 위치까지 미리 설계한다.
즉, 현대 축구의 롱패스는 빌드업을 포기하는 선택이 아니라 상대의 압박을 한 번에 뛰어넘기 위한 또 하나의 빌드업 방식이다.
1. 강한 전방 압박이 짧은 빌드업의 위험을 키웠다.
점유율 축구가 확산되면서 대부분의 팀은 후방 빌드업에 많은 선수를 투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수비하는 팀도 이에 맞춰 전술을 발전시켰다. 공격수 한두 명만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미드필더와 측면 수비수까지 전진해 상대의 패스 길을 차단한다.
골키퍼가 센터백에게 패스하면 공격수가 압박하고, 중앙 미드필더에게 연결하려 하면 상대 미드필더가 따라붙는다. 측면으로 공을 보내면 터치라인을 이용해 패스 방향을 제한한다.
이처럼 압박이 정교해지면서 짧은 패스만 고집하는 팀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 자기 진영에서 공을 빼앗기면 곧바로 실점 위기를 맞는다.
- 빌드업에 많은 선수가 내려오면서 전방에 선수가 부족해진다.
- 짧은 패스는 많지만 실제 전진 거리는 짧아질 수 있다.
- 상대가 압박 형태를 갖출 시간을 충분히 얻게 된다.
따라서 여러 팀은 모든 상황에서 짧은 패스를 고집하기보다, 상대가 강하게 전진하는 순간 압박 뒤쪽으로 긴 패스를 보내기 시작했다.
상대 선수 여섯 명이 전방 압박에 참여했다면 그 뒤에는 넓은 공간이 생긴다. 정확한 롱패스 한 번으로 그 공간에 도달할 수 있다면 굳이 위험하게 여러 차례의 짧은 패스를 연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2. 현대 축구의 롱볼은 ‘목적지가 있는 패스’다.
과거의 롱볼 축구는 주로 장신 공격수의 머리를 향해 공을 보내는 방식이었다.
공격수가 헤딩으로 공을 떨어뜨리면 주변 선수가 달려들어 공격을 이어갔다. 최근에도 이러한 원리는 남아 있지만 훨씬 정교해졌다.
현대 축구에서 롱패스의 목적지는 반드시 공격수의 머리가 아니다.
상대 측면 수비수와 센터백 사이의 공간, 수비 라인 뒤쪽, 압박을 위해 전진한 미드필더의 뒷공간을 향해 공을 보낼 수 있다. 공격수가 직접 공을 소유하지 못하더라도 상대가 불편한 자세로 공을 처리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공격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세컨드볼이다.
세컨드볼이란?
긴 패스나 공중볼 경합 이후 어느 팀도 완전히 소유하지 못한 채 주변으로 떨어지는 공을 말한다.
좋은 직접 공격은 첫 번째 공중볼 경합보다 그다음 상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공격수가 헤딩 경합을 벌이는 동안 미드필더와 측면 공격수는 공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위치로 이동한다.
세컨드볼을 따내면 상대 수비진은 공을 바라보며 뒤로 이동하고 있는 반면, 공격 팀은 이미 골문을 향해 전진하는 상태가 된다. 이 순간 수비 조직은 가장 불안정해진다.
따라서 롱볼의 성공 여부를 단순히 패스 성공률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공격수가 공을 직접 잡지 못했더라도 상대 진영에서 세컨드볼을 회수하거나 높은 위치에서 압박을 시작했다면 전술적으로는 성공한 패스가 될 수 있다.
3. 공을 오래 소유하는 것보다 빠르게 전진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현대 축구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한 팀이 수비 대형을 완성한 상태가 아니다.
공의 소유권이 바뀐 직후다.
공격하던 팀은 선수들이 넓게 퍼져 있고, 측면 수비수도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때 공을 빼앗기면 센터백 앞과 측면 수비수 뒤에 넓은 공간이 발생한다.
이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 전환 공격이다.
전환 공격에서는 공을 빼앗은 뒤 첫 번째 패스가 특히 중요하다. 안전하게 뒤로 돌리기보다 상대 수비진이 정비되기 전에 전진 패스를 선택한다.
일반적으로 효과적인 전환 공격은 다음 순서로 진행된다.
- 중원이나 측면에서 공을 빼앗는다.
- 첫 패스로 상대 압박을 벗어난다.
- 빠른 공격수가 수비 라인 뒤로 침투한다.
- 측면과 중앙에서 동시에 골문으로 진입한다.
- 상대 수비가 정렬되기 전에 슈팅으로 마무리한다.
전환 공격이 항상 드리블과 역습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공을 탈취한 뒤 짧게 두세 번의 패스를 연결할 수도 있고, 반대 측면으로 긴 패스를 보내 공격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패스 횟수가 아니라 상대가 수비 조직을 갖추기 전에 공격을 끝내는 것이다.
프리미어리그의 전술 분석에서도 최근 축구의 방향을 단순한 과거식 롱볼로 보기보다는 강한 압박과 빠른 전환, 직선적인 전진이 결합된 형태로 설명한다.
4. 세트피스는 보조 공격이 아니라 독립된 전술이 됐다.
과거에는 코너킥이나 프리킥을 공격의 부가적인 기회로 보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세트피스만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코치를 고용하고, 상대 팀의 수비 방식을 분석해 여러 종류의 패턴을 준비하는 구단이 늘어났다.
2025/26 프리미어리그 시즌 초반에는 첫 124골 가운데 페널티킥을 제외한 세트피스 득점이 31골로 집계됐다. 전체의 25%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시즌 중반 분석에서도 세트피스 의존도가 최근 시즌들보다 높아졌다는 흐름이 확인됐다.
현대적인 코너킥 전술은 단순히 키가 큰 선수에게 공을 올리는 방식이 아니다.
한 선수가 상대 수비수를 가로막고, 다른 선수가 니어포스트로 움직여 수비수를 끌어낸다. 실제 슈팅을 노리는 선수는 뒤쪽 공간으로 돌아 들어가거나 골키퍼가 나오기 어려운 위치에서 점프한다.
직접 헤더가 나오지 않더라도 페널티박스 밖에서 세컨드볼을 회수할 선수를 배치한다. 상대의 역습을 차단하기 위한 수비 인원도 미리 정해 놓는다.
롱스로인이 다시 등장한 이유
스로인은 오프사이드가 적용되지 않는다.
공을 멀리 던질 수 있는 선수가 있다면 측면 깊은 지역에서 얻은 스로인을 사실상 코너킥처럼 활용할 수 있다. 수비수가 공의 낙하지점만 바라보게 만들고, 골키퍼 주변에 혼잡한 상황을 조성할 수도 있다.
2025/26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롱스로인의 사용과 이를 통한 득점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공식 리그 분석에서도 롱스로인이 다시 중요한 공격 수단으로 등장했다고 평가했다.
강팀과 약팀의 전력 차이가 커진 상황에서 세트피스는 약팀이 경기의 균형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경기 전체에서는 밀리더라도 단 한 번의 코너킥이나 프리킥을 정교하게 준비하면 득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5. 그렇다면 점유율 축구는 정말 끝난 것일까?
점유율 축구가 끝났다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공을 소유하면 상대는 공격할 수 없다. 점유율은 경기의 속도를 조절하고, 상대를 자기 진영에 가두며, 체력을 소모시키는 데 여전히 효과적이다.
문제는 점유율의 숫자 자체가 아니다.
센터백과 미드필더가 자기 진영에서 패스를 반복해 만든 65%의 점유율과 상대 진영에서 지속적으로 압박하며 만든 65%의 점유율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중요한 것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공을 어디에서 소유했는가?
자기 진영에서의 점유율보다 상대 페널티박스에 가까운 지역에서의 점유율이 더 위협적이다.
둘째, 공을 소유하면서 얼마나 전진했는가?
패스를 많이 연결하더라도 상대 수비 라인을 넘지 못하면 득점 가능성은 높아지지 않는다.
셋째, 공을 잃은 뒤 어떻게 반응했는가?
공을 빼앗긴 직후 즉시 압박해 다시 소유권을 되찾을 수 있어야 안정적으로 공격을 지속할 수 있다.
결국 현대 축구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은 점유율 축구가 아니라 목적 없는 점유율이다.
6. 앞으로의 대세는 ‘하이브리드 축구’다.
최근의 강팀들은 짧은 패스와 긴 패스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지 않는다.
상대가 내려앉으면 짧은 패스로 수비를 움직이고, 상대가 강하게 압박하면 롱패스로 압박 뒤쪽을 공략한다. 공을 빼앗으면 빠르게 전진하지만, 공격 기회가 보이지 않으면 다시 공을 돌리며 경기를 통제한다.
이를 하이브리드 축구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 축구에서는 골키퍼도 상황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상대 공격수가 소극적으로 압박하면 센터백에게 짧게 연결하고, 상대가 여러 명을 전진시키면 공격수를 향해 정확한 긴 패스를 보낸다. 센터백 역시 단순히 수비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전방으로 공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미드필더에게는 패스 능력과 함께 세컨드볼을 예측하고 회수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공격수는 발밑으로 공을 받는 기술뿐 아니라 수비수와 몸싸움을 벌이고 주변 동료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역할까지 수행해야 한다.
결국 미래의 축구는 ‘짧게 패스하는 팀’과 ‘길게 보내는 팀’으로 구분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경기 상황에 따라 두 가지 방법을 자유롭게 전환하는 팀이 가장 강한 팀이 될 것이다.
2026/27 프리미어리그에서 주목해야 할 다섯 가지
2026/27 프리미어리그는 2026년 8월 21일 개막한다.
새 시즌에는 단순한 포메이션보다 다음 요소를 살펴보면 각 팀의 전술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 골키퍼의 긴 패스 정확도
골키퍼가 압박을 피해 어느 지역으로 공을 보내는지, 공격수가 경합하기 좋은 패스를 제공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센터백의 전진 패스
상대 미드필더 라인을 한 번에 통과하는 패스는 짧은 빌드업과 직접 공격을 연결하는 핵심 기술이다.
3. 세컨드볼 회수 위치
긴 패스 후 어느 팀이 떨어지는 공을 차지하는지를 보면 중원의 조직력과 선수 배치를 확인할 수 있다.
4. 공을 빼앗은 직후의 첫 번째 선택
후방으로 안전하게 연결하는지, 상대 수비 뒤로 즉시 전진하는지에 따라 감독의 공격 철학이 드러난다.
5. 세트피스 전담 전술
코너킥에서 선수들이 어느 위치로 움직이는지, 골키퍼를 어떻게 방해하는지, 세컨드볼을 누가 준비하는지 살펴보면 단순한 크로스 이상의 전술을 발견할 수 있다.
결론: 점유율의 종말이 아니라 목적 없는 점유율의 종말이다
점유율 축구는 끝나지 않았다.
다만 공을 오래 소유하는 것만으로 상대를 지배할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압박 전술이 발전하면서 후방에서 짧은 패스를 반복하는 행동은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다.
최근 프리미어리그에서 롱패스와 롱스로인, 세트피스, 빠른 전환 공격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축구가 과거로 돌아갔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대의 직접적인 축구는 데이터와 선수 배치, 압박 유도, 세컨드볼 회수 계획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설계된다. 짧은 패스와 긴 패스, 점유와 역습을 상황에 맞게 결합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축구를 지배할 팀은 무조건 공을 오래 소유하는 팀도, 무조건 긴 패스를 사용하는 팀도 아닐 것이다.
공을 소유해야 할 순간과 빠르게 전진해야 할 순간을 정확히 구분하는 팀이 경기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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