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이어졌던 이적설이 마침내 현실이 됐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핵심 미드필더 이강인이 파리 생제르맹을 떠나 스페인 라리가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2026년 7월 25일 이강인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2031년 6월 30일까지이며, 이강인은 구단의 상징적인 번호 중 하나인 등번호 7번을 받았다. 이강인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군에서 뛰게 된 최초의 한국인 선수이기도 하다.
이번 이적은 단순히 이강인이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팀을 옮겼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PSG에서 수많은 우승을 경험했지만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던 이강인이 이제는 자신의 장점을 더욱 필요로 하는 팀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강인에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이적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축구에서 그는 어떤 역할을 맡게 될까.
3년 만에 다시 돌아온 라리가
이강인에게 스페인은 낯선 무대가 아니다.
2011년 발렌시아 유소년팀에 입단한 이강인은 스페인에서 축구선수로 성장했다. 2018년 발렌시아 1군에서 프로 데뷔했고, 이후 마요르카로 이적해 자신의 잠재력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특히 마요르카에서 보낸 마지막 시즌은 이강인의 유럽 커리어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공격을 이끌었고, 드리블과 전진 패스, 왼발 킥 능력을 앞세워 라리가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로 성장했다.
그 활약을 바탕으로 이강인은 2023년 PSG에 입단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세 시즌을 보낸 뒤 다시 라리가로 돌아오게 됐다.
그러나 이번 스페인 복귀는 과거와는 성격이 다르다. 발렌시아 시절의 이강인이 가능성을 인정받던 유망주였다면, 마요르카에서는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젊은 선수였다. 이제 아틀레티코에 합류하는 이강인은 유럽 정상급 무대와 수많은 우승을 경험한 완성도 높은 선수에 가까워졌다.
익숙한 언어와 문화, 이미 경험한 리그로 돌아온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리그에 적응해야 했던 PSG 이적 당시보다 훨씬 빠르게 팀에 녹아들 가능성이 높다.
PSG에서 얻은 것과 남겨진 아쉬움
이강인의 PSG 생활을 단순히 성공이나 실패 중 하나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는 PSG에서 세 시즌 동안 공식전 124경기에 출전해 16골과 16도움을 기록했다. 리그1 우승 세 차례를 비롯해 프랑스컵과 슈퍼컵, UEFA 슈퍼컵, 인터콘티넨털컵을 들어 올렸으며 두 시즌 연속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경험했다.
선수 개인의 우승 경력만 놓고 보면 매우 성공적인 시간이었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고,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한 높은 수준의 경기를 경험했다. 측면 공격수와 중앙 미드필더, 가짜 9번 등 다양한 역할을 맡으면서 전술적인 이해도 역시 높아졌다.
하지만 출전 경기 수와 팀 내 영향력은 다른 문제였다.
이강인은 적지 않은 경기에 출전했지만, PSG의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확실한 주전으로 선택받지는 못했다. 특히 직전 시즌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는 출전 기회가 제한됐다. 팀은 우승했지만 이강인이 경기의 중심에 있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이강인에게 필요했던 것은 또 하나의 우승 트로피보다 명확한 역할과 꾸준한 출전 시간이었다.
그런 점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이적은 커리어의 방향을 바꾸는 선택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팀에서 경쟁하는 것보다, 자신의 기술과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팀에서 핵심 선수로 도약하겠다는 결정에 가깝다.
최대 4,000만 유로가 보여주는 아틀레티코의 기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이강인의 구체적인 이적료를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주요 외신은 이번 이적 규모가 옵션을 포함해 최대 4,000만 유로에 이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결코 가벼운 투자가 아니다.
이강인이 단순한 로테이션 자원이나 아시아 시장을 위한 마케팅용 선수였다면 아틀레티코가 이 정도 규모의 이적료와 2031년까지 이어지는 장기계약을 제시할 이유는 없다.
물론 높은 이적료가 곧바로 선발 출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시메오네 감독은 이름값이나 이적료보다 전술 수행 능력과 수비 가담, 훈련 태도를 중요하게 평가하는 감독이다.
그럼에도 이번 계약은 아틀레티코가 이강인을 단기적인 전력 보강이 아닌 향후 공격진의 핵심이 될 수 있는 선수로 판단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강인은 이제 가능성을 보여줘야 하는 유망주가 아니라, 구단의 투자가 옳았음을 경기장에서 증명해야 하는 선수가 됐다.
등번호 7번, 기대와 부담이 함께 담긴 번호
이번 이적에서 가장 상징적인 부분은 이강인이 등번호 7번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아틀레티코의 7번은 최근까지 구단 역사상 최다 득점자인 앙투안 그리즈만이 사용했던 번호다. 그리즈만은 오랫동안 아틀레티코 공격의 중심을 맡았고, 득점과 도움뿐 아니라 수비 가담과 경기 운영에서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보여줬다.
이강인이 7번을 받았다고 해서 그리즈만과 완전히 같은 역할을 맡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즈만은 공격수와 미드필더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며 페널티박스 안으로 침투하는 능력이 뛰어난 선수였다. 반면 이강인은 공을 직접 소유하고 패스와 드리블로 공격의 방향을 만들어내는 플레이메이커 성향이 강하다.
그러나 그리즈만이 떠난 뒤 비어 있던 번호를 이강인이 물려받았다는 사실은 분명 의미가 있다. 구단이 이강인을 새로운 공격 프로젝트의 중요한 선수로 바라보고 있다는 상징적인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부담도 상당할 수밖에 없다.
좋은 경기를 펼칠 때는 새로운 7번이라는 기대를 받겠지만, 부진할 때는 자연스럽게 그리즈만과 비교될 것이다. 이강인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즈만을 그대로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장점을 활용해 아틀레티코의 새로운 7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시메오네 감독은 이강인을 어떻게 활용할까?
이강인의 가장 큰 장점은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오른쪽 측면과 왼쪽 측면,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에서 모두 뛸 수 있다. PSG에서는 상황에 따라 최전방 공격수처럼 배치되기도 했다.
아틀레티코에서 가장 유력한 위치는 오른쪽 측면과 오른쪽 하프스페이스다.
오른쪽에서 출발한 이강인이 중앙으로 이동하면 주발인 왼발을 활용할 수 있다. 직접 슈팅을 시도하거나 공격수에게 침투 패스를 연결할 수 있고, 반대편 측면으로 공격 방향을 전환하는 것도 가능하다.
스페인 현지에서는 이강인이 오른쪽 측면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는 인사이드형 미드필더뿐 아니라 수비형 미드필더 앞에 배치되는 3미드필더 구성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시메오네 감독이 4-4-2를 사용할 경우에는 오른쪽 미드필더로 배치될 가능성이 있다. 공격할 때는 중앙으로 이동해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고, 오른쪽 풀백이 측면을 넓게 활용하는 방식이다.
3-4-2-1이나 3-4-3을 사용한다면 최전방 공격수 뒤에서 뛰는 오른쪽 공격형 미드필더가 이강인에게 가장 이상적인 자리가 될 수 있다. 이 위치에서는 상대 수비와 미드필더 사이에서 공을 받을 수 있고, 측면 깊은 지역까지 내려가야 하는 수비 부담도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상대가 수비적으로 내려앉는 경기에서는 중앙 미드필더로 내려와 공격 전개를 맡을 수도 있다. 이강인의 탈압박과 패스 능력은 촘촘한 수비를 상대로 공격의 흐름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아틀레티코가 이강인을 필요로 하는 이유
시메오네 감독의 아틀레티코는 오랫동안 강한 수비 조직력과 압박, 빠른 역습을 강점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상대가 수비 라인을 내리고 공간을 주지 않을 때는 공격이 단조로워지는 문제가 반복됐다. 공을 소유한 상황에서 수비 조직을 흔들 수 있는 창의적인 선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강인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선수다.
좁은 공간에서도 공을 쉽게 빼앗기지 않고, 한두 명의 수비수를 드리블로 벗겨낼 수 있다. 상대 수비 사이로 패스를 넣는 능력이 있으며, 왼발을 활용한 크로스와 중거리 슈팅도 위협적이다.
특히 이강인은 경기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빠른 공격이 필요할 때는 전진 패스로 속도를 높이고, 상대 압박이 강할 때는 공을 지키면서 동료들이 움직일 시간을 벌어준다. 무조건 빠르게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공격의 템포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세트피스 역시 아틀레티코가 기대할 수 있는 무기다.
이강인의 왼발 코너킥과 프리킥은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꾸준히 위력을 보여줬다. 수비 조직력이 강한 아틀레티코에 정교한 세트피스까지 더해진다면 한 골로 승부가 결정되는 경기에서 더 많은 선택지를 확보할 수 있다.
주전으로 자리 잡기 위해 넘어야 할 과제
이강인의 기술적인 능력에는 큰 의심이 없다.
그러나 시메오네의 축구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먼저 충족해야 할 조건은 수비 가담이다.
아틀레티코의 측면 미드필더는 상대 풀백의 전진을 따라가야 하고, 중앙 미드필더와 간격을 유지하며 수비 블록을 만들어야 한다. 공을 빼앗긴 직후에는 빠르게 압박에 참여해야 한다.
공격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수비 전환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위치를 놓친다면 출전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
플레이 속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이강인은 공을 소유하면서 상대를 끌어낸 뒤 패스 공간을 만드는 능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아틀레티코의 빠른 역습 상황에서는 공을 오래 가지고 있기보다 한두 번의 터치로 공격을 연결해야 할 때가 많다.
마지막으로 공격 포인트가 필요하다.
이강인이 아틀레티코의 핵심 공격 자원으로 인정받으려면 좋은 패스와 드리블을 보여주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직접 골을 넣고 도움을 기록하면서 팀의 승리에 구체적인 결과를 더해야 한다.
PSG에서의 마지막 시즌 이강인은 공식전 39경기에서 4골과 5도움을 기록했다. 아틀레티코에서 더 많은 출전 시간을 받는다면 이보다 높은 공격 포인트를 목표로 해야 한다.
이강인의 선택은 옳았을까
유럽 최고의 전력을 보유한 PSG를 떠나는 결정은 겉으로 보면 아쉬울 수 있다.
PSG에서는 매 시즌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도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수의 커리어에서 소속팀의 이름만큼 중요한 것은 그 팀에서 어떤 역할을 맡느냐는 점이다.
이강인은 이제 만 25세다.
더 이상 출전 기회를 기다리며 성장 가능성을 평가받을 시기가 아니다. 자신의 전성기를 준비해야 하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경기의 중요한 순간에 투입되고, 팀의 공격을 이끌며, 승패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이적은 비교적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아틀레티코는 라리가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상위권에 도전할 수 있는 명문 구단이다. 동시에 PSG보다 이강인의 창의성과 왼발을 필요로 하는 팀이다. 리그와 언어에 이미 익숙하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강인이 자신의 장점을 보여주기에 좋은 환경이다.
물론 아틀레티코에서도 주전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경쟁의 성격이 다르다. PSG에서는 세계적인 공격수들 사이에서 제한된 역할을 받아들여야 했다면, 아틀레티코에서는 자신의 경기력에 따라 팀 공격의 중심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이제는 우승팀의 조연이 아닌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이강인은 PSG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했고, 프랑스 무대를 지배했으며, 두 차례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랐다. 어린 시절부터 꿈꿨을 법한 수많은 트로피를 이미 손에 넣었다.
하지만 이번 이적을 통해 이강인이 원하는 것은 또 하나의 우승 경력만이 아닐 것이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이강인에게 2031년까지 이어지는 장기계약과 등번호 7번을 제시했다. 현지 보도대로라면 최대 4,000만 유로에 이르는 이적료도 투자했다.
이는 이강인에게 기회인 동시에 새로운 책임이다.
시메오네 감독이 요구하는 수비 강도에 적응해야 하고, 빠른 경기 속도에서도 자신의 기술을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좋은 경기력을 실제 골과 도움으로 연결해야 한다.
발렌시아에서 가능성을 보여줬고, 마요르카에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으며, PSG에서 우승하는 방법을 배운 이강인.
이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우승팀의 조연이 아닌, 팀의 승리를 직접 만들어내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등번호 7번을 달고 다시 라리가에 도전하는 이강인이 아틀레티코의 부족했던 창의성을 채우고 새로운 공격의 중심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답글 남기기